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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야초등학교 개교역사

  • 우리 지역에서 최초로 공립보통학교가 1925년 6월에 월야리 평촌(중보 – 현 중,고등학교 자리)마을에 설립되어 개교하였다. 그 이전에는 영광보통학교나 1920년에 설림된 나산보통학교로 통학하거나 서당교육을 받았다. 개학 당시에는 선생님들이 각 마을 서당을 찾아 다니며 학생들을 모집하러 다녔다고 한다. 인근에 있는 해보면은 월야보다 보통학교가 2년 후에 개교하였기 때문에 1회 졸업생은 해보출신이 많았다.
  • 1933년에 월야면 용암리에 2년제 월야공립보통학교 부설 대야간이학교(大也簡易學校)가 개교하였다. 이 학교의 특징은 취학 년령이 넘은 나이 많은 학생이 입학하여 2년을 수료한 후 본교로 적당한 학년에 편입하여 초등학교과정을 졸업하였다. 간이학교는 해방 후에 6년제 월야북국민학교로 학제 개편이 이루어 졌다.
  • 1950년 6.25가 나던 해에 현 위치의 학교는 22회를 마지막으로 졸업하고 그해 10월 말경에 공산군이 후퇴하면서 불을 질러 교사가 전소되는 바람에 22회 이전 졸업생은 학적부가 없다. 지금 중학교에는 1회 졸업생이 졸업 기념으로 심은 벚나무 30여 그루가 있었으나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한 채 고사하고 10여 그루만 현재 남아 있다.
  • 그해 12월경에 전쟁의 잔해를 떨치고 지방에 계시던(정상기 선생님 증언 – 현 86세) 정병록선생, 정상기선생, 고 이은채선생, 고 정흥선선생들께서 집에서 놀고 있던 학생들을 불러 모아 순촌과 독골(전하뒷산) 진주정씨 제실을 이용해서 교육을 실시하였고, 1951년 10월 20일 현 위치로 집터로 잡으면서 산골에 있던 제실을 뜯어와 교실 세칸을 짓고 맨 바닥에 멍석(집으로 만든 덕석)을 깔고 열악한 환경에서 공부를 하였다.
  • 현 위치의 땅은 일제강점기에 전남제사공장 잠실(蠶室)이 있어 뽕나무와 고구마를 심었든 곳으로 관리인이었던 고인이 되신 이삼형(李三衡)씨가 기증하여 터를 잡았고 평촌 학교 자리는 그때 개교를 서두르던 중학교에 넘겨 주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전쟁의 참화 속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동시에 탄생하게 되었다. 이 또한 우리 지역 선배님들의 인재육성과 후생들의 교육을 위한 선견지명에 찬사를 보낸다. 이어서 고등학교 개교에까지 이르러 면단위 지역에서 초, 중, 고가 들어서 이지역의 인재 발굴과 지역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2015. 월야면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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